하얀 절벽, 푸른 바다
영국 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 Seven Sisters. 이스트 서식스(East Sussex)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일곱 개의 백악(chalk) 절벽으로, 사우스 다운스 국립공원(South Downs National Park)의 일부다.
절벽 위에 서면 하얀 벽과 푸른 바다가 만들어내는 대비가 압도적이다. 사진으로 수없이 봤지만, 직접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 초원과 깎아지른 하얀 절벽, 그 아래로 부서지는 파도.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절벽 너머로 프랑스 해안선이 어렴풋이 보인다고 하는데, 이날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서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절벽 위 초원을 따라 걸으며 바라본 Seven Sisters 해안선. 하얀 백악 절벽이 해안을 따라 물결치듯 이어진다.
10월 말의 영국 남부 해안은 바람이 꽤 거셌지만, 그 바람마저도 이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절벽 위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한 것들이 다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Seven Sisters란?
Seven Sisters는 영국 해협(English Channel)을 마주보는 7개의 백악 절벽을 말한다. 동쪽의 Went Hill부터 서쪽의 Haven Brow까지, 각각 이름이 붙어 있다:
- Went Hill — 가장 동쪽, Birling Gap에서 올라오면 처음 만나는 봉우리
- Baily’s Hill — 가장 높은 봉우리 (약 78m). 여기서 보는 전망이 압권이다
- Flagstaff Brow — 과거 깃대가 세워져 있던 자리
- Brass Point — 중간 지점에 위치
- Rough Brow — 거친 지형이 특징
- Short Brow — 이름처럼 비교적 낮은 봉우리
- Haven Brow — 가장 서쪽, Cuckmere Haven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절벽
절벽은 약 7천만 년 전 백악기 시대에 형성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백만 년 동안 바다와 바람에 의해 깎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지금도 매년 조금씩 침식되고 있다. 실제로 절벽 가장자리에 서면 발밑의 땅이 갈라져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 이 풍경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도버의 백색 절벽(White Cliffs of Dover)과 혼동하기도 하는데, Seven Sisters는 도버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별개의 장소다. 도버 절벽은 항구와 인접해 인공적인 구조물이 많은 반면, Seven Sisters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오히려 더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런던에서 Seven Sisters까지
기차: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 브라이턴
런던에서 Seven Sisters로 가려면 브라이턴(Brighton)을 경유하는 것이 편하다.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 International) 역에서 템스링크(Thameslink) 열차를 타면 브라이턴까지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킹스크로스(King’s Cross) 역과 바로 붙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기차표는 미리 Trainline 앱이나 내셔널 레일(National Rail) 웹사이트에서 예매하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당일 구매하면 왕복 £20~30 정도이지만, 사전 예매(Advance 티켓)로 구매하면 편도 £10 이하로도 가능하다. Off-peak 시간대를 노리는 것이 핵심이다.
템스링크 열차는 런던 시내를 관통하면서 여러 역에 정차하기 때문에, 숙소 위치에 따라 중간 역에서 탑승하는 것도 방법이다. East Croydon, Gatwick Airport 등을 거쳐 브라이턴까지 쭉 내려간다.
버스: 브라이턴 → Birling Gap
브라이턴 역에 도착하면, 역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12번 또는 12X 버스를 타면 된다. 이스트본(Eastbourne) 방면으로, 해안 도로를 따라 약 1시간 10분 정도 달리면 Birling Gap 정류장에 도착한다. 우리는 Birling Gap에서 출발해 서쪽의 비지터 센터 방향으로 걷는 코스를 선택했기 때문에, Seven Sisters Country Park 정류장보다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버스 배차 간격은 약 30분 정도이니, 돌아올 때 시간을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Brighton & Hove Buses 앱을 깔아두면 실시간 도착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
브라이턴 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가는 것도 좋다. 버스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니, 간식도 미리 챙겨두자.
하이킹 코스: Birling Gap → Visitor Centre
왜 Birling Gap에서 출발했나
Seven Sisters 하이킹의 대표 루트는 비지터 센터(Exceat)에서 Birling Gap까지 가는 서→동 방향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Birling Gap에서 출발해 비지터 센터 방향으로 걸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 하이라이트를 뒤에 남길 수 있다. 서쪽으로 걸으면 Haven Brow에서 Cuckmere Haven을 내려다보는 Seven Sisters의 가장 상징적인 뷰를 마지막에 만나게 된다
- 돌아오는 버스가 편하다. 비지터 센터(Seven Sisters Country Park 정류장)에서 브라이턴행 버스를 타면 되니, 하이킹이 끝나고 바로 돌아갈 수 있다
- Birling Gap 카페에서 출발 전 에너지 보충이 가능하다
Birling Gap에서 출발
Birling Gap에 도착하면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있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따뜻한 차 한 잔과 스콘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화장실도 여기서 미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 하이킹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카페 옆 계단을 내려가면 절벽 아래 해변에도 잠시 내려갈 수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백악 절벽은 위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위압감이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잠깐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절벽 위를 걷다
Birling Gap에서 서쪽으로 올라서면 첫 번째 봉우리인 Went Hill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업다운이 시작된다.
절벽 위 초원을 따라 걷는 길이라 울타리나 난간이 전혀 없다. 바로 옆이 수십 미터 낭떠러지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충분히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실제로 매년 절벽 가장자리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두 번째 봉우리인 Baily’s Hill은 Seven Sisters에서 가장 높은 지점(약 78m)이다. 경사가 가팔라서 숨이 차지만, 정상에 서면 방금 출발한 Birling Gap과 저 멀리 Beachy Head 등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뒤돌아보는 이 풍경이 이날 하이킹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였다.
이후 Flagstaff Brow, Brass Point, Rough Brow, Short Brow를 차례로 넘는다. 봉우리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펼쳐지는 풍경이 계속 달라진다. 어떤 구간에서는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고, 어떤 구간에서는 뒤돌아보면 방금 걸어온 절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업다운이 꽤 있어서 체력 소모가 생각보다 크다. 일곱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Haven Brow — 마지막 봉우리
마지막 봉우리인 Haven Brow에 도착하면, 이 코스의 진짜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서쪽 아래로 Cuckmere Haven의 사행천(蛇行川)이 바다로 흘러드는 풍경이 펼쳐진다. 초록 들판 사이로 강이 구불구불 흐르다 바다와 만나는 모습은, 수많은 영국 관광 포스터와 엽서에 등장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방금 걸어온 일곱 개의 절벽이 해안선을 따라 물결치듯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걸어온 길을 눈으로 되짚는 이 순간이, Birling Gap에서 출발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Cuckmere Haven을 지나 비지터 센터로
Haven Brow에서 내려오면 Cuckmere Haven 해변을 지나게 된다. 자갈 해변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여기서 강을 따라 북쪽으로 약 20분 정도 걸으면 Exceat 비지터 센터에 도착한다. 이 구간은 평탄한 길이라 절벽 위 업다운에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다.
비지터 센터에 도착하면 바로 앞 도로에 Seven Sisters Country Park 버스 정류장이 있다. 여기서 브라이턴 방면 12번 버스를 타면 된다.
여행 팁
- 교통 요약: 런던 St Pancras → Brighton (템스링크 약 1시간 20분) → Birling Gap (12번 버스 약 1시간 10분). 복귀는 Seven Sisters Country Park 정류장 → Brighton → 런던
- 하이킹 거리: Birling Gap → Visitor Centre 편도 약 5.6km, 소요 시간 약 2~2.5시간 (사진 촬영, 휴식 포함)
- 준비물: 방풍 재킷 필수. 10월 말 절벽 위는 바람이 매섭다. 트레킹화를 추천하지만, 운동화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과 간식도 넉넉히 챙기자
- 화장실/매점: Birling Gap 카페(출발 지점)와 Exceat 비지터 센터(도착 지점)에 화장실이 있다.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출발 전에 꼭 다녀오자
- 추천 시기: 봄~가을이 가장 좋다. 겨울에도 가능하지만 해가 짧아 시간 관리에 유의. 10월 말 기준 해가 5시쯤 지니, 늦어도 오후 1시까지는 하이킹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 날씨 체크: 영국 날씨는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출발 전 BBC Weather에서 Seaford 또는 Eastbourne 날씨를 확인하자. 비 오는 날에는 절벽 위 길이 미끄러울 수 있다
- 버스 시간 확인: 하이킹 시작 전에 복귀 버스 시간을 반드시 확인해 두자. Brighton & Hove Buses 앱이 유용하다
Seven Sisters Country Park Exceat, Seaford, East Sussex BN25 4AD, UK 입장료 무료 / 주차장 유료 (약 £6~8)
브라이턴에서의 시간
Seven Sisters만 보고 런던으로 돌아가기 아쉽다면, 브라이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하이킹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브라이턴으로 돌아오면, 해변가를 따라 산책하거나 유명한 브라이턴 피어(Brighton Palace Pier)를 구경할 수 있다.
브라이턴은 런던 근교에서 가장 활기찬 해변 도시 중 하나다. The Lanes라고 불리는 좁은 골목길에는 빈티지 숍과 카페, 레스토랑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하이킹으로 지친 다리를 쉬면서 펍에서 피시 앤 칩스와 맥주 한 잔을 즐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완벽하다.
브라이턴에서 런던으로 돌아갈 때는 브라이턴 역에서 다시 템스링크를 타고 세인트 판크라스로 돌아오면 된다. 저녁 시간대에는 배차가 넉넉하니 시간에 크게 쫓기지 않아도 된다.
마치며
Seven Sisters는 영국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런던에서 당일치기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고, 브라이턴까지 합치면 알찬 하루가 된다.
Birling Gap에서 출발해 비지터 센터까지 걷는 동안, 일곱 개의 봉우리를 하나씩 넘으며 만나는 풍경은 매번 달랐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Haven Brow에서 뒤돌아 걸어온 길을 바라보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만 남는 절벽 위의 그 순간을, 영국 여행 일정에 하루쯤 넣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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